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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이탈리아의 리비에라(Riviera)에 위치한 휴양 도시 산레모(Sanremo). 

여기에서 1951년부터 매년 봄에 이탈리아 최대 대중 음악 축제인 산레모 음악제 (Festival di Sanremo)가 개최되고 있다.

1951년, 제1회는 출전 가수 단 3팀이 20곡의 출전곡을 번갈아 가면서 불렀다고 한다. 최근에 들어서야 우승자가 대대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원래 이 음악제는 "곡"그 자체가 주체인 대회인 것이다. 

 

점차 방송사와 각 레코드 회사도 주목하게 되면서, 1953 년부터는 하나의 곡을  2명의 아티스트가 노래하는 "더블 캐스트 방식"이 채택되었다. 

1958년 제8회 도메니코 모두뇨(Domenico Modugno)와 조니 도렐리(Jonhhy Dorelli)의 <Nel blu dipinto blu(Volare)>가 우승, 이 곡은 미국에서 최초로 외국인 가수에 의해 밀리언 셀러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우면서 제1회 그래미 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듬 해인 1959년의 우승곡 <Piove (차오 차오 반비나)>도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여 산레모 음악제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또한, 모두뇨의 성공은 이후 Lucio Battisti (루찌오 바티스티 )로 대표되는 이탈리안 팝의 기본형인 싱어송라이터 (칸따또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60년대에는 음악제의 세계화를 모색, 더블 캐스트 방식의 파트너 일부를 외국인 가수가 맡게 되어, 폴 앵카(Paul Anka) , 디온 워윅(Dionne Warwick), 진 피트니(Gene Pitney), 프랑스 갈(France Gall) 등이 참여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 이탈리아의 경제가 악화되자 외국인 가수의 초빙도 어려워지고 1971년을 마지막으로 더블 캐스팅도 폐지하게 되면서 음악제 자체가 많이 축소되고 말았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  다시 경제도 살아나는 추세가 되어, 산레모 음악제도 부활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1984년부터는 신인 부문이 신설, 에로스 라마조띠(Eros Ramazzotti)가 초대 우승자가 되었다. 1990년부터는 오케스트라에 의한 반주가 부활가 부활되었고, 1990 · 1991 년에는 외국인 가수를 초빙하였던 이전의 '더블 캐스팅'까지 부활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출전하지 않았던  뿌우(I Pooh), 리카르도 코치안떼(Riccardo Cocciante), 레나토 제로(Renato Zero)등의 거물급 스타들도 잇따라 출전하게 되었으며, 이 시기의 신인이었던 마르코 마시니(Marco Masini), 라우라 파우시니(Laura Pausini) , 지오르지아 (Giorgia), 알렉스 브리띠(Alex Britti)등은 현재 이탈리안 팝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아티스트로 활약을 펼치고 있다.

 

 

Nilla Pizzi



2회 대회에서는 5명의 가수들이 초청되어 각각 솔로나 듀엣을 이루어 3일동안 경연을 펼쳤다. 

초청된 가수는 1회때의 세명의 가수 닐라 피지(Nilla Pizzi), 아칠 토글리아니(Achille Togliani), 듀오 파사노(Duo Fasano)와 첫 참여 가수 지노 라틸라(Gino Latilla), 오스카 카르보니(Oscar Carboni)이다.
닐라 피지가 상위권을 모두 휩쓸게 되면서 그녀는 이탈리아 최고의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위 - Nilla Pizzi - Vola colomba




2위 - Nilla Pizzi - Papaveri e papere





3위 - Nilla Pizzi - Una donna pre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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